22/07/2026
작은 자사호에 담긴 넓은 세계 🍵
자사호의 둥글고 작은 몸통 위로 빼곡하게 새겨진 글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 안에 담긴 우주같이 넓은 철학에 마음이 웅장해지곤 합니다. 지유명차 가산점의 자사호를 읽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단아한 자태에 깊고 묵직한 명문을 품고 있는 범효려 작가의 사뉴 자사호 이야기입니다
기물의 몸통에 정교하게 새겨진 글은 당나라 문인 유우석이 지은 누실명입니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다 결국 좁고 누추한 방으로 쫓겨난 그가, 자신의 초라한 방에 지어 붙인 아주 당당하고 멋진 선언문이죠
📜 山不在高,有仙则名。水不在深,有龙则灵。斯是陋室,惟吾德馨。苔痕上阶绿,草色入帘青。谈笑有鸿儒,往来无白丁。可以调素琴,阅金经。无丝竹之乱耳,无案牍之劳形。南阳诸葛庐,西蜀子云亭。孔子云:何陋之有?
산은 높아야 하는 게 아니라,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 된다. 물은 깊어야 하는 게 아니라, 용이 살아야 영험한 물이 된다. 이곳은 비록 누추한 방이지만, 오직 나의 덕(인품)이 향기를 뿜어내니 전혀 누추하지 않구나.
이끼 낀 돌계단은 푸른빛을 더하고, 풀빛은 창가로 비쳐 들어와 싱그럽다. 나와 담소를 나누는 이는 모두 고명한 학자요, 오가는 이들 중 속된 자는 하나 없으니 참으로 좋구나.
마음 편히 거문고를 타며 맑은 음악을 즐길 수 있고, 깊은 경전을 읽으며 도를 깨달을 수 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지 않고, 복잡한 서류 업무가 몸을 피곤하게 하지 않으니 그저 평화로울 뿐이다.
남양에는 제갈공명의 초가집이 있었고, 서촉에는 양자운의 조용한 정자가 있었지.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길, ”군자가 사는 곳에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하셨으니, 이곳이 바로 그곳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