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3/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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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군복 바지의 허벅지 부근 큼지막한 주머니(이른바 “건빵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박준 시인의 책 제목 가 불현듯 떠오릅니다. 한 계절을 함께 보낸 커피가 끝나 안녕을 고할 때 든 생각입니다.
지난 여름, 재즈피넛을 찾은 손님 분들께선 과테말라 라스 아메리카스 커피를 유독 좋아하셨습니다. 많이 찾아주신 만큼 저도 많은 양의 커피를 볶았지요. 스탠다드한 중배전을 기본으로, 기분에 따라 좀 덜 볶기도 해보고, 기름이 나올락말락한 지점까지 볶아도 보았습니다. 어떻게 볶아도 과테말라 라스 아메리카스는 맛있었습니다. 따뜻하게 마셔도, 시원하게 마셔도 즐거운 커피랄까요. 아, 참 맛있는 커피다, 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원두였습니다.
이번 겨울 느즈막히 개시한 재즈피넛 커피 블렌딩 겨울 에디션 ”윈터 서핑“ 또한 많은 사랑을 받은 커피입니다. 가게를 하기 전부터 산미가 있는 커피를 썩 즐기지 않았던 탓이었는지, 약배전 로스팅이 제겐 무척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에 드는 맛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지요. 배전도에 알맞는 로스팅 방법을 찾은 다음엔 블렌딩을 위한 원두 배합이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고, 많은 커피들이 애꿎게 버려졌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블렌딩이 바로 ”윈터 서핑“. 약배전 커피를 만들 때 주안점을 두었던 것이 ”산미가 어떻게 느껴지는가“였는데, 윈터 서핑의 산미는 참 맑고 고왔습니다. 과하지 않고, 튀지 않는 그 산미가 너무 마음에 들었죠. 덕분에 향미가 고스란히 커피에서 느껴졌습니다. 섬세하고 순간적인 매력이 있었어요. 처음 마셨을 때부터 ”이거다!“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블렌딩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합에 있어 핵심적인 콩이 절판되었을 때의 낭패감은....
과테말라 라스 아메리카스와 윈터 서핑에 대한 기억은 제 개인적으로 각별할 것 같습니다. 개업하고 여러 모로 불안할 때 용기를 주었고, ”나의 커피“라는 자부심을 알려주었으니까요. 그런 커피를 만나 참 감사합니다. 커피에도 인연이 있을까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지금 아니면 영영 만나지 못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없으니까요. 그 맛과 즐거운 감각만이 기억 속에 어렴풋하게 자리할 뿐입니다. 후후, 사람의 인연도 그렇듯 커피 또한 “있을 때 잘 해 후회하지 말고” 입니다.
늦겨울부터 초봄까지 재즈피넛 커피를 든든하게 지켰던, 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블렌딩 “윈터 서핑”이 오늘 점심을 끝으로 완전히 소진되었습니다. 아듀, 영영 끝입니다. 처음 가게를 찾아주신 손님 분들과 짧은 점심 시간 동안 먼 곳에서 지인 분들과 가게를 또 들려주신 손님께서 맛있게 드셔주셔서 더욱 기뻤습니다. 보람을 느낍니다😊
이제 봄 기분을 빌어 새로운 블렌딩이 시작됩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영화 를 다시 보았습니다. 한 30번은 본 것 같은데, 앞으로 300번은 너끈히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비추는 뉴욕의 봄빛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폭탄이 터지고, 두 남자가 쌩고생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웃음). 봄날의 다이하드와 같이 기운 차고 아름다운 커피를 기대해주세요!!
아울러 마지막 사진은 “윈터 서핑”에 영감을 주었던 겨울 해변의 이미지인 영화 의 로케이션. 서핑하고 싶네요. 업~~! 🏄🏄♀️